출처:플레이XP 칼럼 당당하게 소통하라


지난 13일, 장민철은 ‘드림핵 스톡홀롬 인비테이셔널’에서 유럽의 쟁쟁한 게이머들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머나먼 스웨덴에서 장민철이 다시 한 번 세계 최고의 게이머라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늦은 새벽 시간에도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팬들은 장민철을 응원하고 우승을 축하했지만 일부에서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비난의 이유는 White-Ra를 응원하던 유럽팬들이 부르짖던 ‘치즈러쉬’가 아닌 장민철의 ‘영어 실력’ 때문이었다. 장민철의 어색한 ‘콩글리시’를 문제 삼은 것.

 

그렇다면 장민철의 영어 실력이 정말 비난받을만한 일이었을까? 아무리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봐도 돌아오는 답은 ‘아니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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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의 이유는 ‘장민철’이기 때문?
개인적으로 장민철이 영어로 비난받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장민철’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민철은 평소 당당한 이미지로 팬과 안티팬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장민철이 우승을 차지하자 안티팬들이 그의 영어 실력을 꼬투리 잡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한 예로 ‘안드로장’ 장재호는 몇 년 전 독일 현지에서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인터뷰의 절반 이상은 “umm…”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장재호를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해외 선수들의 영어 실력은 어떨까? 나는 드림핵 대회가 개막하던 12일, 곰TV의 글로벌 해설을 맡고 있는 대니얼 스템코스키와 함께하고 있었다. 대니얼 스템코스키는 IM과 NS호서의 연습실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고, 통역을 위해 전 eSTRO팀의 코치를 맡았던 김성환씨가 함께 했다. NS호서와의 인터뷰가 있기 전 커피를 마시던 중 나는 김성환씨에게 영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영어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공부를 하지 않는 나는 기회만 되면 영어 고수에게 이것저것을 묻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동유럽 선수들의 영어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나는 그저 그들의 발음이 좋지 않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유럽 선수들의 영어도 엉망이란 것이다. 그들의 모국어도 영어와 문법이 달라 단어를 나열하는 순서가 뒤죽박죽이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부끄러움 없이 영어를 술술 내뱉는다. 물론 한국사람 보다야 영어가 한결 쉬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를 ‘영어’를 받아들이는 문화적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영어를 대화의 도구,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지만, 우리는 ‘평가’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 앞둔 선수들에게 부담감 주지 말아야….
물론 이것은 가벼운 에피소드로 넘길 수 있다. 다만 우려가 되는 것은 향후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에 관한 것이다. e스포츠는 선수들의 정신력, 즉 ‘멘탈’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선수들은 경기를 준비하는 것만 해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게다가 해외 대회라면 현지의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음식, 시차 적응 등 여러 문제들이 따른다. 이런 상황에 영어에 대한 부담감까지 더해진다면 선수들은 그만큼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며칠간 이어지는 토너먼트 대회라면 이러한 부담감은 선수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스타크래프트2의 해외 e스포츠 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워크래프트3는 국내에서 스타크래프트1에 비해 큰 인기를 얻진 못했지만 해외에서는 달랐다. 많은 프로팀들이 활발할 활동을 해왔고, 한국의 프로게이머들은 대부분이 해외팀 소속이었으며, 거의 모든 대회를 해외에서 치렀다. 스타크래프트2의 판은 이보다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이미 해외의 모든 메이저 대회는 물론이고, WCG에서도 2011년 정식 종목으로 스타크래프트2를 채택했다.

 

이처럼 북미와 유럽에서는 많은 게이머와 대회들이 워크래프트3에서 자연스레 스타크래프트2로 넘어가는 추세여서 국내 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스타크래프트1에 비해 상당히 잦아질 것이다. 때문에 선수들의 영어 공부는 필요한 요소겠지만, 이를 일부러 강요할 필요는 없다. 해외 진출이라고 하더라도 맨유의 박지성처럼 현지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을 가한다면 선수들의 사기만 떨어질 것이다.

 

외국어, 실력보다 ‘소통’이 중요하다
나는 지난 몇 년간 e스포츠 현장에서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왔다. 물론 현장에는 항상 통역들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통역이 없을 때 가장 ‘소통’을 잘하는 사람들은 영어 실력보다는 자신감이 뛰어난 이들이었다. 그들은 외국인들과 대화를 함에 있어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

 

이는 역으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외국 선수들이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을 무시하거나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대니얼 스템코스키는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등의 간단한 말을 자주 쓴다. 얼핏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발음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그의 발음이 좋지 않다고 지적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외국어 실력보다는 ‘소통’에 중점을 두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자세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장민철은 ‘소통’에 아주 착실했다. 장민철은 드림핵 우승 직후 영어로 인터뷰를 했으며, 경기 전 GosuGamers와의 인터뷰 말미에서도 영어로 해외 팬들에게 직접 인사를 전했다. 물론 아주 짧고 앞뒤가 맞지 않는 영어였지만 그의 평소 이미지에 맞는 ‘당당한’ 영어였다.

 

영어 실력에 대한 논쟁, 지독한 문화사대주의
며칠 전에는 한복을 입은 사람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신라호텔’ 사건이 논란이 되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는 외국의 문화를 떠받드는 문화사대주의가 스며들어 있다. 장민철이 영어를 못한다고 비난을 받는 이유도 문화사대주의에서 기인한 일인 것이다.

 

장민철은 영어 실력 평가를 받으러 간 것이 아니다. 세계의 게이머들과 실력을 겨루기 위해 떠난 것이고, 당당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장민철에게 돌아온 것은 우승에 대한 칭찬보다 영어 실력에 대한 평가였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 능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비난 받는 것은 옳지 않다. 영어 능력대로 평가받는다면 대한민국 인구의 약 95%는 비난 받아야 할 것이다.

 

게이머는 철저히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승부의 세계 앞에 외국어 능력 따위는 결코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장민철의 당당한 영어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칼럼을 쓰며 90년대 가요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젝스키스의 데뷔곡 ‘학원별곡’ 중 이런 가사가 나온다.

 

‘영어 시험에서 백점을 맞는다고 아메리카 맹구와 말이 통하나?’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글을 마친다.

(c)PlayXP



예전부터 많이 접하던 이야기 맥락이다.
대화의 수단,'언어'인 영어를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람의 스펙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보는 이유가 뭘까.
왜 그리 토익에 목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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